Tace Wisher
타세 위셔
외관
커미션_@BBUNG___comm
성격
정적인|노력하는|조급한
정적인 : 무려 17년 동안 밝고 활발하여 마주치는 모든 이들과 친구가 되곤 했던 타세 위셔는 집으로 돌아간 다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현재의 타세 위셔는 필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먼저 타인에게 말을 건내는 법이 없었으며, 침묵을 견디다 못한 타인이 먼저 살갑게 말을 걸어도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단답으로 응수하여 대화가 길게 이어지는 법이 없었다. 물론 타고난 성격을 완전히 뒤바꿀 수는 없었는지 사람과의 연을 끊지는 못했지만, 그가 작은 조각상들과 함께 보낸 편지의 내용은 고작해야 ‘선물이야.’, ‘살아있어.’, ‘잘 지내?’ 같은 한 줄의 문장 뿐이었다. 또한 돌아온 답장의 내용과 길이가 어떠하든, 그는 다시 답장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생존신고와 다름없는 일방적인 선물과 편지를 주기적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리하여 조각가로서의 타세 위셔만을 아는 사람은 그가 진중하고 예술에만 집중하여 사교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평을 내리고는 했다.
“사람은 누구나 바뀔 수 있지. 나도 내 상태가 어떤지 알고 있으니까 구태여 말해줄 필요 없어.”
노력하는 : 사실, 각종 공식 석상에서 조각가 타세 위셔의 외관만 본 이들은 그의 집에 우환이 든 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다.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변했건만, 그는 늘상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말수가 적기는 했으나 물건을 팔 때 필요한 처세술이나 사교술은 훌륭하게 해냈기 때문에. 곪아든 그의 속과 달리, 그의 보이는 면은 완벽하게 ‘부모님의 재능을 넘치도록 물려받아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신흥 예술가’를 표방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반 년동안 자신의 성질을 죽이고 ‘고객’을 대하는 태도를 익혔다는 것은 그의 가족만이 알고 있는 비밀. 그는 여전히 노력하는 자였다. 그 노력의 방향이 오로지 조각을 하고 그 조각을 파는 자로서 갖춰야 하는 태도를 익히는 것에 불과할 지라도.
“하하, 나는 내가 평생 고개 숙이는 법을 익히지 못할 줄 알았는데. 그건 단지 내가 다급하지 않기 때문이었어. 필요하게 되니 어떻게든 되더라. 우습기도 하지…. 그토록 싫어하던 유형의 인간이 되다니.”
조급한 : 산책을 좋아하던 그는 느긋함을 잃고 조급함을 얻었다. 하루 5시간의 수면시간과 세 끼 총합 30분의 식사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그는 정과 망치를 손에 쥐고 조각을 했다. 자신에게 남은 것은 이것밖에 없다는 듯. 호그와트를 졸업하고 6년 동안 그가 받은 의뢰의 수는 그의 아버지가 평생 동안 받은 의뢰의 절반에 약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이제 그를 움직이는 것은 흥미가 아니라 돈이었다. 합당한 돈만 걸린다면 그는 마감기한이 아무리 촉박하여도, 주제가 통념적인 것에서 벗어나더라도 일을 완벽하게 끝냈다. 이로 인해 예술계 일각에서는 타세 위셔를 돈에 눈 먼 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의뢰를 가려 받았으며, 때로는 의뢰금을 받지 않기도 했던 그의 아버지와 비교하여 타세 위셔를 깎아내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그래, 나는 예술가가 아니야. 먹고 살기 위해 일할 뿐이지.”
직업
조각가
지팡이
사시나무|유니콘의 털|10인치
기타
Wisher
주의사항: 가족의 부상
우여곡절 끝에 졸업을 한 후 머글세계로 돌아간 그는 텅 비어 온기 한 점없는 집과 마주하였다. 사람이 살지 않은지 오래된 듯 먼지가 가득한 그의 본가는, 오로지 우체통만 반질반질하였다. 그리고 그 우체통에는 타세 위셔가 졸업식 일주일 전에 보냈던 편지가 꽂혀 있었다. 그는 당황하여 옆집을 찾아갔다. 그가 살던 곳, 아일랜드의 더블린 끝자락은 서로의 포크 개수를 알고 있을 만큼 친하게 지냈으니까. 그는 나이를 먹을 수록 지나치게 친밀한 이곳에 염증을 느꼈지만, 어쨌든 현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은 이웃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옆집의 노부부는 이사를 가지 않았는지 오랜만에 보는 이웃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성급한 발걸음으로 의자에 앉은 타세는 안부인사도 건너뛰고 왜 제 본가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지부터 물었다. 인심좋은 노부부는 그 물음에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가 졸업하기 반 년 전, 위셔네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고.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아버지, 록스 위셔의 유명세에 열등감을 가진 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록스 위셔와 싸우다가-심지어 싸운 이유는 록스 위셔에게 큰 돈을 빌린 후에 갚지 않아서다- 그를 계단에서 밀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록스 위셔는 혼수상태가 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버지는 계속해서 병원에 신세를 지고 있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병원비와 간호를 위해 그들의 정든 집을 팔고 병원 근처에서 셰어 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고, 일주일에 한 번 그가 보낸 우편이 왔는지 확인하러 이곳에 온다고 말하며 노부부는 그를 위로해주었다. 타세의 가족은 그가 이 사건을 알게 된다면 학교도 내팽개치고 집으로 돌아올까봐 지금까지 침묵했던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조각가였던 아버지는 6년이 넘은 지금까지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입원하고 있으며, 어머니는 소소하게 굴리던 무역업체만으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파트타임 일을 추가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여동생은 간호학을 배워 아버지의 곁을 지키고 있다. 단란하고 행복하던 가족은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삶을 살게 되었다.
Tace Wisher
‘페니아’. 조각가로서 활동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페니아’가 타세 위셔라는 것, 그리고 그는 거장 록스 위셔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공적인 곳에서는 꿋꿋하게 ‘페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는 경각심을 갖고자.
살고 있는 곳은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작업실. 따로 집을 구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처음부터 생일을 챙기지 않았던 것은 훌륭한 선택이었다. 이제는 더이상 생일을 챙길 시간도, 돈도, 여유도 없었으니까.
양손잡이가 되었다. 끊임없이 작업을 해야 했기에 한 손을 주로 쓴다는 것은 사치나 다름없었다.
담배를 피기 시작하였다. 수면과 식사시간 외에 유일하게 가지는 휴식시간이었다.
높았던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낮아졌다. 작업 때문에 돌먼지를 많이 들이마셨기 때문인지, 혹은 담배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가족사 때문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의 앞에서 ‘가족’은 금지된 주제였다. 그는 어머니께 큰일이 생기지 않는 한 연락하지 마라고 말할 정도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돈에 미쳤다거나 돈만 주면 세상에 내보일 수 없는 것이라도 승낙할 것이라는 말이 돌았지만, 그 누구도 타세 위셔의 조각을 깎아내리는 법이 없었다. 그의 재능은 빛났기 때문에. 타세 위셔가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싫어했기에 사람들은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조각을 본 사람은 누구나 인정했다. 타세 위셔의 조각이 그의 아버지의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여전히 계산에는 약했다. 허나 이 말이 흥정과 계약에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토록 싫어하던 고개를 숙여가면서까지 계약을 따내고는 했다. 자신의 가치를 더 높여 부르는 것은 물론이었고.
취미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있다면 담배를 피우는 것이 될 테니까.
좋아하는 것 또한 사라졌다. 싫어하는 것은 글쎄, 수없이 많지 않을까. 그에게 직접 싫어하는 것을 묻는다면 그는 단숨에 없다고 말할 테지만.
그는 자신의 독특한 부분은 모두 지웠다. 혹여나 꼬투리 잡히는 일이 없도록. 그렇게 타세 위셔의 습관은 사라졌다.